천안 감성여행

이번주 금요일, 병천순대거리에서 만나요

병천순대거리

01

병천순대거리

  • 위치 /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33 일대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공원

  • 위치 /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 장터 1길 12-23

"순댓국 좋아하세요?"

"네."

"그럼 한 잔 더 할래요?"

"그래요."

처음에는 인사하기도 어색한 사이였던 친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을 터놓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해보니 그 시작에는 순댓국이 있었다.
사실 순댓국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된장찌개, 김치찌개와 달리 순댓국을 좋아하냐고 물을 때면
마음 한 쪽에 작은 긴장이 감돈다.
다른 음식들에 비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유독 징그럽다거나 하지도 않은데.

그리고 ‘좋아한다’는 대답을 듣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놓이고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하고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편안한 사이가 된 뒤 친구와 나는 순댓국이 생각날 때마다 만나게 되었다.
따끈하면서 부드럽고 깊은 맛은 날씨도 마음도 변덕스러운 요즘 같은 환절기에 더욱 생각난다.

친구와 순댓국이 먹고 싶다.
누린내 없고 부드러운 순대와 산뜻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으로 유명한 천안의 병천순대거리로 향한다.

병천순대거리는 유관순 열사의 3ㆍ1독립만세운동으로 유명한 아우내 장터가 있는 곳에 있다.

60여 년 전,
인근에 햄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병천에서는
채소와 선지를 많이 넣어 순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는 병천 장날에만 한두 곳의 식당에서 순대를 팔았는데, 이제는 수십 곳으로 증거하여 순대거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만큼 유명해지고 인기가 많아진 것이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순대 천국이다.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순대 전문식당의 간판들이 여기가 바로 병천순대거리임을 알려준다.

병천순대가 생긴 이래 계속 순댓국을 팔아왔다는 가장 오래된 가게를 찾았다.
으리으리한 건물은 아니지만 포근한 기분이 든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냄새와 공기가 단골식당에 온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당연하지만 모둠 순대와 순댓국을 주문한다.

그리고 떨어진 시간 동안 하지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둠 순대가 먼저 나온다. 그간 있었던 일을 뭐라도 빼먹을까 걱정하듯 서로가 보낸 삶의 작은 토막들을 샅샅이 공유한다.

순대의 맛이 기대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진해서 깜짝 놀라는 바람에 잠시 대화의 꼬리가 잘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맛있는 음식은 대화를 더욱 풍성하고 자연스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뜨끈한 순댓국이 마저 나온다. 뽀얀 국물에 검은 순대 그리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 등장부터 아주 멋지다.

새우젓과 다대기로 간을 한다. 적당히 얼큰해진 국물을 한 모금 맛보자마자 우리의 대화는 잠시 멈췄다.
땀이 쏙 빠지도록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이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고 음식에 전념하게 한다.

분명 모둠 순대에 있는 순대와 순댓국에 들어있는 순대는 같은 순대일텐데,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희한하다.

모둠 순대는 순대가 가진 고소한 맛이 아주 풍부하게 느껴지고,

순댓국에 들어 있는 순대는 그 자체의 개별적인 맛보다는 육수와 어우러진 부드럽고 뜨거운 맛이
입안에서 목으로 넘어갈 때까지 긴 여운을 준다.

순대는 영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현대인들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자주 사용해 피로해진 눈에 특히 도움이 된다.

돼지 선지에는 비타민A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철분과 단백질도 풍부해서 빈혈, 두통 등에도 효과적이다.

마음도 배도 든든하게 하고 가게 문을 나선다.
소화도 시킬 겸 길게 늘어선 순대거리를 걷다 보니 천안의 명물로 유명한 호두과자를 마주하게 된다.

고소한 냄새가 참 좋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 계산을 하고 있다.

호두과자 한 봉지를 들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거리를 걷고 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옛 고향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해가 짧아졌다. 아쉬운 기분이 든다.
어두워지면 다시 짧거나 오랜 시간 떨어져 있겠지.
그래도 날이 더 싸늘해지면 순댓국이 생각날 테니
당연히 서로를 다시 찾아 만날 거라는 믿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아쉬움을 접어 둔다면 간단한 한 끼 식사를 한 것뿐인데 기운이 솟는다.

좋은 친구와 편안한 음식은 보약과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 함께 순댓국을 먹으며 마음의 벽을 허물었을 때처럼,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도 봤던 것처럼 편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순댓국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