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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정동
팀명 부성2동 등록일 2016-07-01 조회 3845
첨부
 

본래 천안군의 북이면에 속하였고 마을 앞에 큰 우물이 있어 물이 말로 쏟아져
나온다고 말우물 또는 斗井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上斗井과 北一面의 新酒幕을 합쳐서 두정리라 하
여 영성면에 속하였다가 1931년 천안읍제가 실시되면서 다시 환성면에 편입되었
다가 1963년 천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두정동이 되었다.

말우물 : 두정동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말우물 또는 원두정이라고도 한다.
성정동에서 차암동으로 가는 길가에 발달된 취락이다. 마을 앞에 큰
우물이 있고 물이 말(斗)로 쏟아져 나온다고 말우물이다. 도시 근교농
업이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마을 앞에까지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미구
에 도시속에 흡수될 마을이다.

뒷고개 : 말우물 동리의 뒤쪽에 있어서 뒷고개다. 고개를 넘으면 성정동의 차암
동으로 이어진다.

진 등 : 말우물 동리의 뒷산을 말한다. 길게 뻗어서 마을의 북서쪽을 감싸고
있으며 [긴등]과 같다하여 긴등이 변해서 진등이 되었다.

수여지구레(水餘池) : 말우물 동리 앞에서 구터 샛터 앞으로 펼쳐진 들.
들가운데 물이 많이 나는 수여지(水餘池)라는 못이 있어서 수여지구레
라고 하였다.

도둑골 : 동리 남쪽의 진동 너머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는 이곳을 지나는 길손
이 많아서 길손을 괴롭히는 도둑들이 군거하던 곳이라 도둑골이라 하였
다.
※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말우물 앞길은 아산과 평택지방으로 가
는 대로였다.

사당넘어 : 말우물 서쪽으로 진등넘어에 있다. 옛날 이곳에 사당이 있어서 사당
넘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사당이 없다.

새술막(新酒幕) : 경부선철도변 지금의 천안경영정보고가 있는 동쪽에 발달된 취
락. 옛날에는 이곳으로 대로가 통하여 경기도 평택군에 연결되었고 아
산 백석포지방으로 닿았다. 큰길이라 길손이 많아서 주막이 발달하였
고 1930년대까지도 주막이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주막거리라 새술
막이라고 하였다.

새터말(新垈) : 구터와 새술막 사이에 발달된 취락.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새터말이라 하였다.

구터(舊垈) : 말우물 동쪽에 있는 마을. 새터가 만들어지고 난뒤에 마을 이름을
구터라고 하였다. 星州李氏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공산(公山) : 경부국도의 동쪽 청운여자실업고등학교와 북일고등학교 야구장이
있는 곳.

대궐터(大闕垈) : 청운여자실업고등학교의 운동장이다. 옛날 이곳에 대궐이 있
었다고 대궐터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
다.
※ 천안을 영성군이라고 할 때에 군청인 관아가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주변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
각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큰 건물이 있었던 것 같다.

쇠죽골 : 새터말 앞에 있는 골짜기 쇠죽을 담는 쇠죽통과 같이 둥글다고 쇠죽골
이라고 하였다.

오리골(五里谷) : 왜고개의 동쪽 우성사료공장이 있는 남쪽 골짜기.
바깥오리골 그 남쪽을 안오리골이라고 부른다. 골이 깊어 五里나 들어
간다고 오리골이다.

두정동 선사유적지(斗井洞 先史遺蹟地) : 두정동 31번지다. 지금은 유니온포리
마 공장이 설치되어 완전히 자취가 없어졌다. 1964년 9월 지주 장규환
(張奎煥)씨가 밭을 갈다가 선사시대의 유물이 나와 신고되어 당시 국립
박물관의 윤무병교수에 의하여 발굴되었던 초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다. 발굴된 유물로는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창등이 출토되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서식하였던 곳으로 봉명동 개목뒷
산인 봉서산(鳳捿山)의 선사유적지와 성정동 구산골(九相谷洞)에 있는
지석묘(支石墓) 등과 동일시대의 유물로 확인되었으며 상호 관계를 지
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물은 국립박물관에 의하여 수거되었고 유적
지는 건물이 세워져서 찾을 수가 없다.(발굴당시 日本人학자도 왔다.)

점촌(店村:粘村) : 신부동에서 두정동으로 가는 국도변 자동차 운전학원이 있었
던 곳이다. 주변의 흙이 질그릇 만드는 점토가 많아서 옛날부터 질그
릇을 만들고 구웠다. 1960년대까지도 질그릇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자
취를 감추었다.
※ 전국의 어느곳이나 그릇을 굽던 곳은 점촌 또는 점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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